후원하기

CHANGE 13

난민, 그 후의 삶
SPECIAL 01
다시 뿌리 내리는 꿈






#

나는 '장기 난민자' 입니다. 


나무가 뿌리째 뽑혀 트럭에 실려 가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떡잎을 틔울 때부터 지탱해주던 땅에서 강제로 파헤쳐진 나무는, 흔들리는 트럭 위에서 사정없이 떨고 있었습니다. 제 이름은 니요퀴지기라 올레스틴(29세), 두 아이의 엄마인 저는 트럭 위 나무처럼 정착할 곳 없는 '난민'이었습니다. 


<저는 난민촌에서 남편과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유엔 난민기구에서 지어준 장기 난민들을 위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


제 고향 부룬디는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그를 진압하는 군부로 내전이 일어나 수만 명이 목숨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부룬디 인구의 50% 이상이 탄자니아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 역시 내전을 피해 탄자니아로 왔고, 은두타 난민캠프에 수용됐습니다. 은두타는 몰려드는 난민을 위해 새로 만들어진 신규 난민 캠프입니다. 이곳의 난민들은 유엔난민기구에서 보급한 임시 텐트에서 지내며 콩, 옥수수 가루 등으로 만든 배급 식량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은두타 난민캠프를 알리는 표지판>

<은두타 난민캠프의 모습입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유엔난민기구에서 보급한 텐트에서 살았습니다.>


은두타 난민캠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너무 막막하고 힘들었습니다. 제 두 아이는 배급 식량이 몸에 맞지 않아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식량을 구할 수도,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습니다. 아픈 아이를 마냥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고통의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난민캠프 주변에 사는 탄자니아 원주민들도 우리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우리 때문에 물과 땔감이 부족하다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종교, 원주민과의 갈등, 그리고 자연 재해까지 겹쳐 난민캠프에서 보내는 나날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가까스로 피난을 왔지만, 은두타 난민캠프 역시 내전이 일어난 고향처럼 앞날이 깜깜했습니다. 우리는 부룬디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탄자니아에 속할 수도 없는 이방인, 경계인일 뿐이었습니다.




#

생선과 채소를 먹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은 더는 뿌리째 뽑혀 떨고 있는 나무가 아닙니다. 지난해부터 굿네이버스의 직업훈련에 참여하면서 빵 굽는 기술을 배워, 돈을 벌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직업훈련센터를 통해 빵을 구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업훈련센터를 통해 빵을 야무지게 반죽해, 노릇노릇하게 구워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은두타 캠프의 다른 난민들도 직업훈련센터에서 기본적으로 소상공인 교육을 받게 됩니다. 소상공인 교육은 상업활동을 하게 될 때, 물건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시스템 재정관리와 저축 등 실 상거래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습니다. 이후에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미용, 목공, 비누 제작, 핸드폰 수리 기술 등을 배우고 있습니다



<직업훈련학교에서는 모든 난민이 소상공인 교육을 받게 됩니다. 소상공인 교육을 수료한 이후 미씽, 미용, 목공 등의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직업훈련학교에서는 캠프 밖, 시장에 나가 상인들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 현장 체험의 시간도 갖습니다.> 


저는 빵을 구울 오븐과 재료를 지원 받아 일주일에 두 번씩 제가 만든 빵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캠프 내 시장에서 빵을 팔아 처음으로 돈을 벌었을 때 저는 가장 먼저 채소생선을 샀습니다



<시장에서는 여러가지 곡물들과 생선을 판매합니다.>




 <시장에서는 늘 이렇게 활기가 넘칩니다.> 


2주에 한 번 유엔식량계획에서 배급하는 식량으로는 먹을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같은 음식을 먹어야 했던 아이들이 채소와 생선을 먹으며 행복해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옷도 선물했습니다. 새 옷을 얻은 아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속절없이 이곳에 머물며 배급되는 식량만 기다려야 하는 갇힌 삶에 이제 희망이란 것이 생겼습니다. 돈을 더 벌어 자본금이 모이면 우리 가족은 맛있는 빵과 음료수를 파는 작은 가게를 내려 합니다. 얼마 전에는 자본금을 모으는 데 VSLA(Village Saving and Loans Association)를 이용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난민들을 중심으로 저축하고 그 돈을 대여할 수 있는 협회입니다



<협회에서 관리하는 VSLA 키트에는 돈을 넣어 저금을 하고, 또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통 안에는 돈과 주민들의 대여 카드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협회원들이 모여 기금에 저금을 하고 또 기금 관리에 대한 논의를 합니다.> 


우리 난민들은 탄자니아 은행을 이용할 수 없어, 돈을 저축하고, 목돈을 만드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VSLA를 통해 가게를 차릴 자본금을 모을 수 있게 됐습니다.




#

되돌이표를 떼어낸

난민 아이들의 미래 


이런 변화는 제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고 있습니다.


 


난민 캠프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돼도 일자리를 얻기 힘듭니다. 부모 세대와 다른 삶을 꿈꿀 수 없는 난민캠프의 아이들에게 미래란 지독한 현실의 되돌이표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돈을 벌어 자립하고, 우리를 터부시하던 인근 탄자니아 원주민과 함께 상거래 하는 공동시장이 생기면서, 우리 아이들도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변화는 난민과 원주민이 함께 시장운영위원회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도둑놈’, ‘이방인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원주민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 등 돌리던 적대적 관계에서 상생을 꿈꾸는 파트너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공동시장 설립에 힘을 써준 굿네이버스로부터 창업·직업교육, 소액대출 및 창업지원까지 받으며 자립의 꿈에 한 발짝씩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난민을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진다면 난민 캠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는 탄자니아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언젠가 전쟁이 끝난 고향에 돌아가 지금 익힌 기술로 다시금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처럼 직업훈련을 받고 경제활동을 하는 난민은 아직 소수에 불과합니다. 많은 난민은 배급식량만 바라보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그들의 미래는 여전히 깜깜하고, 갇혀 있습니다. 우리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세요. 이렇게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지금은 갈 곳 없는 미약한 뿌리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미래에는 땅속 깊이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로 내려질 거라 믿습니다



난민 자립 정기 후원



이 글 공유하기